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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조각

[책서평] 경성 커피 타임, 경성브라운

책 <경성브라운> | 고예나 장편 소설 | 출판사 산지니

 1918년 경성. 충무로의 옛 이름 ‘진고개’에는 맛있는 가배(커피)로 유명한 카페, 경성브라운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 개화와 일제가 감행한 국권피탈로 격변하는 대한제국에서, 경성브라운에서 일하는 아리따운 여급 홍설도 시대 풍랑에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왕을 모시던 궁녀에서 팔방미인 기녀 삶을 사는 명화와 궁궐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홍설의 수려한 외모와 아우라에 하얀 정장을 즐겨 입는 유쾌한 사내 미스터 리와 매번 겉모습을 바꾸는 수상한 호걸 요한은 각자의 사연으로 그녀를 연모하여 종종 카페를 찾는 단골이다. 책 <경성브라운>은 이 네 인물이 주로 이끄는 이야기다.

 일제가 식민하는 흉흉한 시대라도 사람들이 사는 곳은 어찌어찌 굴러가기 마련이다. 경성브라운 대문 앞에서 장사하는 구두닦이 어린 소년, 개똥이도 마찬가지다. 한데 그런 개똥이의 억울한 요절을 눈앞에서 목도한 계기로, 홍설과 요한은 결국 같은 목표를 향해 어려운 길을 함께 나아가기를 약속한다.

비 오는 날이면 스스럼없이 비를 맞는 것이 일상인 요한은 사랑하는 여인이 그 빗길을 함께 가겠다는 말에 내심 기쁘나 안타까운 마음을 자책하기도 하지만, 용감한 홍설의 굳은 심지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미스터 리는 홍설을, 명화는 요한을 향한 외사랑에 홍설과 요한의 이런 결의와 사랑을 못마땅해하지만 넷을 둘러싼 감정과 상황은, 단순 연모만은 아니다.

망국의 백성이라는 울분, 피를 통해 이어진 매국에 대한 죄의식과 무기력, 그리고 국내외 정세의 흐름 등은 이 네 명을 운명의 절벽 끝에 내몰기 시작한다. 그들은 선택해야 한다. 어떻게 살 것인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야기의 절정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이는 소설 속 인물 모두가 카페 경성브라운에 앉아 홍설이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며 한 번씩 고민하던 화두다. 전쟁터에서 살아온 자도, 조선을 매국한 가문 사람도, 그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하는 사람조차 마시는 커피 한잔에 비친 자기 모습을 직면하는 일에는 자유로울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홍설, 그의 커피는 조금 특별하다.

 작품 한 인물의 대사가 인상 깊다. 가배는 사람을 각성시키는 힘이 있다는 말. 이야기 속 가배는 카페에서 파는 음료 이상의 역할을 해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누고 정보와 생각을 공유하게 하는 매개로써, 이를 통해 홍설은 고종황제를 알현하는 기회를 가지는 데에 이른다. 경성브라운에서 내린 커피 한잔이 홍설 자신의 사랑과 운명을 각성시킨 계기가 된 것이다.

 결국 산 사람은 시대를 불문하고 각자 선택한 방법대로 살아야 하는 법.

책 <경성브라운>을 펼쳐 이야기와 호흡하다 보면 실재 당대 역사적 인물을 삼삼오오 경성 거리에서 무심코 만날 수 있다. 그들도 각자 선택한 삶을 덤덤히 선택해 살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 길 위엔 애국하는 마음, 우정과 배신 그리고 운명 같은 사랑도 함께 보인다.

100년도 더 지난 지금,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1919년 경성에서 일어난 3.1 운동과 같이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책 <경성브라운>은 역사적 사실 고증이 잘 된 작품이다. 그렇다고 내용이 마냥 무겁지만 않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넘치고 유쾌한 재치가 따뜻하다. 당시 인물들이 했을 것 같은 말투와 단어를 생생하게 묘사하고자 노력한 작가님께 따뜻한 응원 보내고 싶다. 경성브라운을 읽으며 마시던 커피가 ‘무중력의 시간’을 거쳐 100년 전 경성브라운에서 방금 건너온 것처럼 향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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